내가 사는 곳의 장점 중 하나는 무료로 예술을 즐길 기회가 많다는 것.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은 모두 무료 입장이고, NGA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주말마다 무료 음악회도 연다. 그리고 의회도서관의 음악분과에서는 최정상급 레벨을 포함한 여러 아티스트를 초청해서 의회도서관 건물 내의 소규모 공연장에서 음악회를 시즌제로 올리는데 티켓 오픈하는 날 예매 경쟁이 있긴 하지만 알람 맞춰놓고 기다리다가 티켓 개시되는대로 클릭질만 잘 하면 한 사람 당 무료티켓을 최고 2장씩 겟할 수 있다. 광탈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략을 잘 세워서 공략하면 100% 성공도 가능하다.


티켓 확보에 실패하더라도 무료 공연이라 no show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공연 시작 2시간 전에 가서 대기번호를 받고 기다리다가 공연시작 5분 전이 되면 빈자리에 앉을 수 있다. 대부분 클래식 음악 공연이지만 적어도 시즌당 2차례는 재단의 후원을 받아서 재즈 공연도 하고, 영화 상영도 하고 그렇다.


지난 시즌은 알람을 안 맞춰놓고 정신줄 놓고 있다가 30분 늦게 들어가서 티켓 구경도 못했지만 이번 시즌은 그간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전략을 세운 덕에 원하던 공연 티켓을 모두 확보할 수 있었다. 뭐 전략이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들리지만 그냥 인기 많을 것 같은 공연 순서대로 브라우저 창을 준비해놓고 하나씩 공략하는 거가 다임. 보통은 탑레벨 아티스트 공연이 역시 유명세 덕에 인기가 많고, 고음악이나 현대음악 레퍼토리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은 편.


프랑스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의 이번 공연 프로그램은 드뷔시와 라벨, 그리고 프랑크까지 프랑스 출신 작곡가 3인방의 바이올린 소나타.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는 적어도 수십 번 이상 들어서 익숙하지만 드뷔시와 라벨은 다소 생소해서 Tidal에서 부랴부랴 검색해서 벼락치기로 예습 땡기고 감.


드뷔시는 본인의 악기인 과르네리 파네트로 연주했는데, 아이작 스턴이 50년 동안 쓰던 악기라고 함. 중저음은 음색이 풍부하고 깊은 소리가 나는데 고음으로 가면 엄청 화려한 색채. Brilliant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그런 음색이었는데 화려하고 이목을 끌지만 경박스럽지 않다고 하면 대충 감이 오지 않을까 싶다. 특히 3악장 연주가 좋았음.


잠시 퇴장했다가 의회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과르네리를 들고 입장. 의회도서관 음악분과 소장품 중에는 친필 악보 뿐만 아니라 악기도 있는데, 음악 잘 모르는 사람도 들어봤을 스트라디바리우스가 6점(바이올린 3대, 비올라 2대, 첼로 1대), 과르네리는 2점이 소장되어 있음. 특이한 점은 과르네리가 만든 바이올린 2대는 같은 나무를 사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쌍둥이로 불리기도 함. 둘이 나란히 놓고 보면 나무결 패턴 등이 일치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중 처음 의회도서관에 들어온 건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작곡가인 크라이슬러(참고로 조슈아 벨의 크라이슬러 앨범 정말 좋다)가 사용하다가 기증한 "크라이슬러". 그리고 시몬 골드베르크가 연주하다 사후에 부인이 기증한 "비타 남작"이 이날 카퓌송이 연주한 악기. 


라벨의 곡은 제대로 들어본 게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재즈와 블루스 느낌을 녹여낸 2악장을 위트있게 연주한 점이 특히 좋았지만 아무래도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간간히 연주되는 악기라 그런지 몸이 덜 풀린 느낌이 있었는데, 특히 고음에서 피아니시모 조절이 연주자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파네트와 비교하면 음색이 좀 더 굵고 우는 소리가 난다고 해야 하나. 연주자의 기량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살짝 아쉬웠음.


후반부의 프로그램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였는데, 이건 길 샤함의 1990년 DG 앨범으로 수십 번 들어서 너무나도 귀에 익숙한 곡. 너무 익숙한 나머지 연주자 사이의 해석의 간극 때문에 오히려 연주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특히 1악장 템포를 대체적으로 느리게 가져가고 군데군데 루바토를 좀 과하다 싶게 남용해서 드라마틱해야 할 부분이 멜로드라마가 되어버린 느낌이 없잖았다. 활쓰기도 좀 달랐던 것 같은데 이건 바이올린 잘알못이라 확실하진 않음. 분명 내 기억에 4악장에서 길 샤함은 이 선율 라인을 한 활로 잇지 않고 한두 번 살짝 떼어서 더 극적으로 처리했던 거 같은데 카퓌송은 너무 레가토로 가서 몰아치는 맛이 부족하게 느껴졌음. 고음 피치가 좀 불안정하고 음색도 살짝 거칠었고, 특히 피아니시모 처리가 깔끔하지 않았던 걸 감안하면 확실하진 않지만 프랑크도 의회도서관 악기로 연주한 게 아닌가 싶다.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가 난이도가 높은가 싶기도 하고 (독일의 악보발행사인 Henle에서는 바이올린 곡의 난이도를 1부터 9까지 분류했는데 프랑크 소나타는 난이도 7인거 보면 역시 고난이도).


앵콜곡으로는 마스네의 명상곡을 연주했는데 레가토로 연주한 앞부분은 정말 최고였지만 역시 마지막의 피아니시모 지못미.


전체적으로 보면 좋았지만 살짝 2% 부족했던 연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지 블로거가 올린 공연후기도 있는데 이분은 과찬만 늘어놓으셨네. 그리고 과르네리 바이올린 이름도 잘못 알고 계시고.)





지난주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오늘로 열흘째.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체중을 쟀으나 지난 주에 비해 0.5파운드 (226그램) 정도 체중이 늘었음. 살이라기보다는 아마 체내 수분량 때문에 왔다갔다 하는 정도일테지. 사실 설탕만 안 먹었다 뿐이지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여기서 체중이 더 줄었다면 오히려 이상했을거다. 


사실 난 뭐에 중독되는 편이 아니라 담배나 술 등 오래동안 멀리해도 갑자기 미칠듯이 생각난다거나 충동을 못 견딘다거나 하는 경험도 못 해봤고, 무설탕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에도 디저트나 달달한 음식 사진을 봐도 유혹되거나 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짠 음식만 먹다보니 살짝 단 음식이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먹을 수 있는 단 음식은 과일 밖에 없고, 과일을 먹자니 깎아야하는 게 귀찮아서 그냥 참고 넘어가다가 오늘 장보러 가서 깎지 않고 껍질만 까면 먹을 수 있는 귤, 한라봉, 블러드오렌지, 바나나 이렇게 과일을 잔뜩 사왔다. 껍질째 얇게 썰어서 칩으로 만들어 먹으려고 유기농 사과도 한 봉 사옴.


열흘 동안 불편한 점이라면 생각보다 설탕 또는 유사 당분이 첨가물로 들어간 음식이 엄청 많다는 것.


일단 외식은 샐러드 드레싱 빼고 시켜먹지 않는 이상 어디에 설탕이 숨어있을지 모르는 지뢰밭이고 (샐러드 별로 안 좋아함), 그나마 슈퍼에서 장 볼 때는 성분표만 주의해서 잘 읽으면 되는데, 전혀 단맛이 없거나 설탕맛이 느껴지지 않는 음식에도 설탕이 들어가있는 경우가 많았다. 안두이 소시지에도 들어있고, 주말 아침에 꼭 해먹는 비건소시지에도 설탕이 들어있고, 짠맛 나는 과자류에도 빠짐없이 들어간 설탕... 평소처럼 먹는다면 설탕이 들어있는지 전혀 눈치 못 채고 상당한 양의 설탕을 먹을 수 있다는 얘기. 가공식품을 많이 먹게 되면서 성인병을 앓는 사람,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게 절로 납득이 된다.


솔직히 평소에 단 음식 많이 먹는 편이 아니어서인지 금단현상도 없었고, 피부개선효과나 체중감량 등 기대했던 부수효과 1도 없어서 실망스러움. 앞으로 18일 더 남았는데 끝까지 하게 된다면 순전히 내 의지력 시험 차원이지 별다른 의미는 없을 것 같다. 1주일쯤 지나 다시 경과 체크인 하는 걸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년계획 실행상황 중간 점검  (0) 2019.02.04
.  (0) 2019.01.13
2019년 새해의 다짐  (0) 2019.01.02

Apple Music 체험기간 + 구독기간이 끝나서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Tidal 어플을 열심히 활용하는 중이다.

확실히 둘 다 장단점이 있어서 둘 중에 어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한참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일단 애플뮤직의 장점이라면 미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용할 수 있는 한국 가요 음원이 비교적 많다는 것.

유명한 가수의 경우는 꽤 오래전의 음원도 서비스되고 있고, 메이저 가수의 최신 음원은 거의 다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내가 주로 듣는 클래식 음악의 경우는 음원 자체는 많지만 앨범 정보나 트랙 정보가 아예 부실하거나 아님 인터페이스 상 접근성이 부족하다는 게 참 아쉬웠었는데 Tidal의 경우는 이 점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줘서 참 맘에 든다.

오페라 앨범 같은 경우 애플뮤직에서는 가창자가 누군지 알 길이 없어서 따로 인터넷 검색을 해야 했지만 Tidal에서는 트랙별로 정보보기를 누르면 작곡가, 작품명, 곡명, 지휘자, 반주를 맡은 오케스트라 뿐만 아니라 독창자 이름까지 다 보여주고 어떤 앨범의 경우는 심지어 레코딩 엔지니어 이름까지 보여줌.

그리고 도이체 그라모폰과 특별 계약을 맺었는지 장르별로 검색할 때 DG 레이블의 음반을 따로 찾아볼 수 있게 돼있어서 나름 좋다.

신보만 모아놓은 목록도 따로 있고 추천 플레이리스트는 개인적으로 사용하진 않지만 큐레이션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내 입장에선 애플뮤직처럼 크로스오버나 팝음악으로 분류되어야 할 안드레아 보첼리 류의 음반을 필수음반이라며 추천목록에 넣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그리고 청취했던 음반을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사용해 추천해주는 음반들도 맘에 드는 편이다. 

다만 미국에서도 많이 듣는 Kpop 아이돌 그룹의 음악 말고는 한국음악의 카탈로그가 너무 부실하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일듯.

인터페이스는 맘에 들지 않지만 Spotify가 그나마 애플뮤직과 Tidal의 단점을 커버하는 대안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가장 많이 듣는 클래식 음악만 따지면 Tidal만한 곳이 없어서 어디에 정착할지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1월 한달이 벌써 훅 지나가버렸다. 그동안 신년 계획을 얼마나 실천했는지 중간점검.


1. 주제 상관 없이 블로그에 적어도 1주일에 1회 이상 글쓰기 

--> 한 달 동안 글 1도 안 씀 ㅠㅠ


2. 익숙한 것에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좀 더 많은 경험하기 (음악, 미술전시, 독서, 영화, 레스토랑, 레시피, 취미, 여행 등)

  • 한 달에 1권 이상 책읽기
  • 영화도 적어도 2주에 1편 정도는 볼 것 (넷플릭스, HBO)
--> 영화 1도 안 봄. 작년에 읽기 시작한 1984 드디어 끝까지 다 읽음.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시작함.

3. 취침/기상시간 조절하고 규칙적인 생활패턴 몸에 익히기 (늦어도 3시에는 잘 것)


--> 1주일 정도 잘 실천하다가 다시 4시 취침, 5시 취침으로 생활패턴 바뀜 ㅜㅜ


4. 필요없는 물건 (잡동사니, 옷, 화장품, 가재도구) 정리하고 버리기 (난이도 최상)


-->  Marie Kondo의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보고 자극을 받고자 했으나 shintoism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첫번째 에피소드도 끝까지 못 봄. 화장품 정리는 했으니 그래도 반쯤은 성공.


5. 건강한 식생활 

  • 인스턴트 음식, 패스트푸드, 유제품 줄이기
  • 채소와 과일 많이 먹기
--> 외식(=과식)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반쯤은 실패. 

6. 운동 (맨몸운동 + 요가) 일주일에 2번 이상 하기 (10파운드 감량이 목표)


--> 규칙이나 계획 없이 생각나면 하는 식이라 규칙을 세우는 게 필요할 듯.


7. 외국어 공부 (스페인어 아님 이탈리아어)


--> Mango라는 외국어 학습툴로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 레슨 몇 과 익히고, 이탈리아어 공부 팟캐스트도 몇 개 들었지만, 계획없이 주먹구구식이라 효과가 없음. 계획과 목표를 세우는 게 절실함.


8. 텃밭 가꾸기 (계획 세워서 제대로)


--> 계획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책 구입했고 다음주에는 무슨 작물을 심을 지 결정할 예정.


9. 친구, 가족에 자주 연락하기


--> 1년여 만에 학교 친구들 만나서 같이 밥도 먹었고, 새해 맞아서 친구이랑 카톡으로 길게 수다도 주고 받았음. 연례행사가 되지 않게 자주 연락하는 게 중요!


쉽게 흥미를 잃는 편이고 끈기도 없고 의지박약이라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목표 달성하는 게 너무 어려운 것 같다.

2월은 부유하기 보다는 좀 더 목표의식을 갖고 보람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설탕 다이어트 열흘째 중간보고  (0) 2019.02.14
.  (0) 2019.01.13
2019년 새해의 다짐  (0) 2019.01.02

2월 1일부터 한 달 동안 설탕을 넣은 음식을 먹지 않는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허무하게 3일만에 계획이 무너짐. 

토요일에는 주말이라 모처럼 아점으로 냉동 해시브라운을 데워 먹었는데 오후에 슈퍼갔다가 같은 제품을 더 사려고 성분표를 보니 마지막에 dextrose라는 게 눈에 들어왔다. 느낌이 쎄해서 급히 구글신을 소환하니 설탕의 일종이라고 ㅠㅠ

오늘 점심에는 금요일에 만들었던 남은 음식을 데워먹다가 왠지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길래 국물용 큐브 성분표를 찬찬히 읽어보니 maltodextrin이라는 성분이 뙇! 정확히 따지면 사카린 계열이라 설탕은 아니지만 몸에 들어가면 설탕이나 다를 바 없는 성분.

집에서 떡국 끓여먹는 대신 저녁은 한국음식점에서 떡만두국으로 퉁치려고 했는데 어차피 식당에서 나오는 반찬은 설탕범벅이고 떡만두국이라고 설탕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도 하고 해서 2월 4일부터 3월 3일까지 4주간 설탕을 첨가한 음식은 먹지 않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이제 대놓고 설탕이 아니라 dextrose, sucrose, glucose 등 복잡한 이름으로 여러 식품에 첨가되는 화학성분의 정체를 대충 파악했으니 주말에 저질렀던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피할 수 있겠지.


인터넷에서 본 경험담에는 무설탕 다이어트로 살이 3킬로에서 5킬로 정도 빠졌다는 게 대세였는데, 워낙 단 거 좋아하는 체질은 아니라 체중감량에 대한 큰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노력이 필요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고 한다.

덤으로 살이 빠지고 피부가 좋아지고 활력이 생기고 속이 편해진다면 마다하지는 않겠다.



페이스북을 한동안 멀리하며 접속하더라도 한번에 5분을 넘기지 않다가 모처럼 뉴스피드를 스크롤하다 보니 갑자기 우울해진다.

역대 최장이라는 미국 정부의 셧다운, 트럼프와 러시아 사이의 모종의 관계에 대한 의혹에 불씨를 지피는 기사들, 이방카 트럼프가 월드뱅크 총재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는 말도 안 되고 어이없는 소식, 그리고 해수온도가 예상보다 더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는 보고서까지...

불투명하고 예측할 수 없지만 부정적일 수 밖에 없는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마음에 무겁게 자리잡는다.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의 민주당의 선전에 그나마 희망의 자락이 보이나 싶었는데 이제 2019년이 시작한 지 고작 2주도 채 안 되었는데 주위에서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을 보니 조심스레 가졌던 기대감이 산산이 무너지는 것 같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설탕 다이어트 열흘째 중간보고  (0) 2019.02.14
신년계획 실행상황 중간 점검  (0) 2019.02.04
2019년 새해의 다짐  (0) 2019.01.02

뭐 하나 제대로 성취한 것도 없이 2018년이 너무 허무하게 지나버렸다.

원래 새해 다짐, 신년계획 같은 거 의미없다고 생각해서 누가 신년계획 세운 거 있냐고 물어보면 별 고민 없이 아무거나 대답하곤 했는데

올해는 한국 나이로 불혹이라고 하는 나이이기도 하고, 너무 계획도 없이 목적도 없이 한심하게 살았던 2018년에 대한 반성으로

뭐 거창하진 않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서 글로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편의상 번호를 매기지만 우선 순위는 없고, 가능하면 달성하기 쉬운 목표를 세우려고 한다.


1. 주제 상관 없이 블로그에 적어도 1주일에 1회 이상 글쓰기 


2. 익숙한 것에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좀 더 많은 경험하기 (음악, 미술전시, 독서, 영화, 레스토랑, 레시피, 취미, 여행 등)

  • 한 달에 1권 이상 책읽기
  • 영화도 적어도 2주에 1편 정도는 볼 것 (넷플릭스, HBO)

3. 취침/기상시간 조절하고 규칙적인 생활패턴 몸에 익히기 (늦어도 3시에는 잘 것)


4. 필요없는 물건 (잡동사니, 옷, 화장품, 가재도구) 정리하고 버리기 (난이도 최상)


5. 건강한 식생활 

  • 인스턴트 음식, 패스트푸드, 유제품 줄이기
  • 채소와 과일 많이 먹기

6. 운동 (맨몸운동 + 요가) 일주일에 2번 이상 하기 (10파운드 감량이 목표)


7. 외국어 공부 (스페인어 아님 이탈리아어)


8. 텃밭 가꾸기 (계획 세워서 제대로)


9. 친구, 가족에 자주 연락하기


두서없이 적다 보니 자잘한 목표가 너무 많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2019년을 뒤돌아 봤을 때 꽤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 칭찬할 수 있게 사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설탕 다이어트 열흘째 중간보고  (0) 2019.02.14
신년계획 실행상황 중간 점검  (0) 2019.02.04
.  (0) 2019.01.13

정말 오래간만에 공연을 보고 왔다.

버킷리스트 목록까지는 아니지만 정말 꼭 실황으로 연주를 듣고 싶었던 완소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가 벤자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에 참여한다고 해서 4개월 전부터 표를 사두고 기다렸던 공연. 베를린에 견학 갔을 때 자유시간에 호스텔을 나와 베를린 필하모니 콘서트홀까지 걸어가서 학생증 내고 할인받아 봤던 바르토크의 푸른수염 영주의 성 공연에서 독창자였던 마티아스 괴르네를 13년만에 다시 무대에서 만나서 반갑기도 했고, 세월이 벌써 그만큼 흘렀다는 거에 살짝 슬퍼지기도... 혼자 공연장에 앉아 있으니 10년 전 뉴욕에 살 때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오겠느냐며 월급의 거의 1/3을 음악회랑 오페라에 투자하고 이틀이 머다하고 메트에 출첵하다시피 드나들던 시절이 기억나기도 했다. 카드대금 갚느라 시달렸고 회사 끝나고 피곤에 쩐 상태 그대로 음악회에 가서 꾸벅 졸다가 오는 날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참 행복했었다.


사실 전쟁 레퀴엠에 대해서는 브리튼에 대한 레포트를 쓸 때 책에서 읽기만 했지 직접 공연을 보거나 음반을 찾아들은 적이 없었기에 공연 전날 부랴부랴 애플 뮤직에서 검색해서 레퍼런스 음반이라고 불리는, 브리튼이 직접 지휘하고 브리튼의 파트너 피터 피어스, 그리고 피셔-디스카우,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부인이기도 한 소프라노 비쉬네프스카야가 솔로를 맡은 앨범을 두 번 정주행하고 갔다.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시기에 나치의 공습으로 무너진 성당의 재건 축성식을 위해 의뢰받아 작곡한 곡. 일반 레퀴엠의 라틴어 가사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윌프레드 오웬의 전쟁시를 교차로 엮어 전쟁의 참혹함과 폭력의 무용함을 가사로, 음악으로 전달한다. 그 폐해가 직접 피부로 와닿지는 않지만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상황과 국경을 건너려는 남미에서 온 난민신청자들을 향해 무차별하게 최루가스를 발사한 트럼프 정부의 잔혹함이 겹쳐져 생각나서 공연을 보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먹먹해지기 여러 번.


이안 보스트리지의 연주는 너무 좋았다. 음반처럼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이건 공연장의 탓일수도) 프레이징이나, 다이나믹 표현 등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다. 언젠가는 꼭 좀 더 친밀한 소규모 공연장에서 하는 리사이틀(가곡 프로그램이면 더 좋겠고)을 꼭 가고 싶다. 3층이라 음향은 정말 좋았지만 독창자의 표정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건 순전히 공연장용 망원경을 사놓고도 가져갈 생각조차 못한 내 잘못이지.


요 며칠 아마존 자체 제작 미드 Mozart in the jungle를 정주행해서인지 지휘자를 평소보다 더 유심히 눈여겨보게 되더라. 작곡가의 의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지휘자로서 연주자들에게 원하는 요구사항을 손끝으로, 몸짓으로 소통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다. 


막귀에 음못알이라 음악에 대한 설명은 동영상으로 대신한다. 도입부부터 현악기 선율이 가슴을 후벼파니 주의 바람. 





애플 뮤직 4개월 체험판 신청해놓고서는 정작 음악은 제대로 안 듣고 주로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음원 스트리밍에만 이용하다가

열흘 후면 체험판이 끝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것 저것 여러 앨범을 찾아듣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나온 조성진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피아노 소나타 및 환상곡이 수록되어 있는 음반을 듣고 있는 중이다.

발매일이 11월 16일로 되어있는 거 보니 신보인 것 같다. 검색해 보니 음반 발매 시점에 맞춰 서울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내년 순회공연 일정에 내가 사는 곳도 포함되어 있던데 그러고 보니 계속 예매해야지 마음만 먹고 여지껏 미루고 있었다.


이번에 녹음한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3위로 입상했던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쿨 본선에서도 연주했던 곡


모차르트의 음악은 가볍게 들으면 단순하고 유치한 것 같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들을 제대로 표현해내려면 연주자의 역량이 정말 중요하다.

전문 연주자의 피아노 소나타 연주를 들으면 이게 내가 어렸을 적 피아노 학원 다니면서 쳤던 같은 곡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색다른 음악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

잠시 노래를 공부했을 때 내 목소리가 모차르트에 잘 맞는 음색이라 모차르트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를 몇 곡 불렀었는데

정말 악보도 간단하고 음, 박자를 익히는 건 정말 쉬웠지만 가사에 담긴 감정을 단순한 멜로디에 실어 부르는 게 어찌나 어렵던지...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이 부르는 Porgi, amor나 마술피리에서 파미나의 아리아 Ach, ich fühl's 같은 곡은 정말 역대급으로 부르기 어려운 노래라고 생각.

그래서 캐슬린 배틀, 바바라 보니, 마리아 조앙 피레스, 미츠코 우치다 같이 모차르트 음악을 정말 맛깔나게 소화해내는 성악가나 연주자를 존경한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음반평을 하는 건 무리지만 그래도 간단한 감상평을 한다면 이 음반에서 조성진의 연주는 자기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연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리하지 않고 과하지 않은, 물 흐르듯 편안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천진난만함 속에 숨겨진 복잡한 감정선을 잘 살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좋은 연주.


앞으로도 모차르트 녹음 계속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리뷰



음반/음원 구입 링크는 여기 

애플 뮤직 무료 체험 4개월권을 얻어서 며칠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신세계가 따로 없다.

이동식 하드디스크에 담겨 있는 예전 컴퓨터에 있던 음원들을 새 컴퓨터로 옮기는 일을 차일피일 미룬 지가 벌써 4년이 되었다. 음원 구입보다는 시디 사서 음원을 따서 듣는 편이라 미처 구입하지 않은 음반은 Spotify 피시 버전으로 듣다보니 음악을 1도 듣지 않는 날이 음악을 듣는 날보다 훨씬 많았었는데 애플 뮤직 사용하면서부터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생각나는 음악 검색해서 재생시키고 에어팟 귀에 꽂고 컴터 앞이 아니여도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어 너무 좋음.

아쉬운 점이라면 생각보다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가 부실한 편이고 곡 정보를 한눈에 보기가 어려워서 앨범 전체가 아니라 듣고 싶은 트랙만 찾아 듣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오늘밤에 듣는 음악은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1번.

외국의 한 오케스트라에서 몇 년 전에 온라인으로 진행했던 음악 취향 테스트에서 3악장을 처음 접하고 이거 딱 내 스타일이다 싶어 바로 전곡을 여러 연주자 버전으로 감상.


지금 듣고 있는 음반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오이스트라흐의 녹음이다. 



막귀이고 음알못이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데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이 너무 좋다.

특유의 멜로디 진행과 기묘한 느낌까지 자아내는 화성 전개에 클래식음악 하면 고전음악이나 낭만음악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는 뭥미일 수 있겠는데 내재된 불안감과 긴장감에서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런가 하면 바이올린 협주곡 2번 2악장은 정말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 가운데 고음으로 치솟는 멜로디가 슬프진 않지만 가슴을 후벼판다.




프로코피에프하면 또 피아노 협주곡을 빼놓을 수 없고, 발레음악 로미오와 줄리엣도 정말 훌륭하고 (특히 1막의 기사들의 춤은 들으면 아, 이거! 할 정도로 자주 연주되고 삽입곡으로도 많이 쓰인다), 무엇보다도 오페라 전쟁과 평화의 왈츠를 빼놓을 수 없지만 이 곡들은 기회가 있다면 따로 포스팅하는 걸로. 그래도 그냥 가면 아쉬우니까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가버린 존잘간지남 바리톤 흐포로스토프스키가 안드레이를 연기한 전쟁과 평화 중의 왈츠 장면을 보고 가도록 하자. 프로코피에프 고유의 음악적 색채가 엑기스처럼 담겨있는 곡이라고 생각함. 한 번만 듣고 지나갈 수 없는 마약 같은 음악이라 지금 포스팅하면서 몇 번째 리플레이 중인지 기억도 안 남.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