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래간만에 공연을 보고 왔다.

버킷리스트 목록까지는 아니지만 정말 꼭 실황으로 연주를 듣고 싶었던 완소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가 벤자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에 참여한다고 해서 4개월 전부터 표를 사두고 기다렸던 공연. 베를린에 견학 갔을 때 자유시간에 호스텔을 나와 베를린 필하모니 콘서트홀까지 걸어가서 학생증 내고 할인받아 봤던 바르토크의 푸른수염 영주의 성 공연에서 독창자였던 마티아스 괴르네를 13년만에 다시 무대에서 만나서 반갑기도 했고, 세월이 벌써 그만큼 흘렀다는 거에 살짝 슬퍼지기도... 혼자 공연장에 앉아 있으니 10년 전 뉴욕에 살 때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오겠느냐며 월급의 거의 1/3을 음악회랑 오페라에 투자하고 이틀이 머다하고 메트에 출첵하다시피 드나들던 시절이 기억나기도 했다. 카드대금 갚느라 시달렸고 회사 끝나고 피곤에 쩐 상태 그대로 음악회에 가서 꾸벅 졸다가 오는 날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참 행복했었다.


사실 전쟁 레퀴엠에 대해서는 브리튼에 대한 레포트를 쓸 때 책에서 읽기만 했지 직접 공연을 보거나 음반을 찾아들은 적이 없었기에 공연 전날 부랴부랴 애플 뮤직에서 검색해서 레퍼런스 음반이라고 불리는, 브리튼이 직접 지휘하고 브리튼의 파트너 피터 피어스, 그리고 피셔-디스카우,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부인이기도 한 소프라노 비쉬네프스카야가 솔로를 맡은 앨범을 두 번 정주행하고 갔다.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시기에 나치의 공습으로 무너진 성당의 재건 축성식을 위해 의뢰받아 작곡한 곡. 일반 레퀴엠의 라틴어 가사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윌프레드 오웬의 전쟁시를 교차로 엮어 전쟁의 참혹함과 폭력의 무용함을 가사로, 음악으로 전달한다. 그 폐해가 직접 피부로 와닿지는 않지만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상황과 국경을 건너려는 남미에서 온 난민신청자들을 향해 무차별하게 최루가스를 발사한 트럼프 정부의 잔혹함이 겹쳐져 생각나서 공연을 보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먹먹해지기 여러 번.


이안 보스트리지의 연주는 너무 좋았다. 음반처럼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이건 공연장의 탓일수도) 프레이징이나, 다이나믹 표현 등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다. 언젠가는 꼭 좀 더 친밀한 소규모 공연장에서 하는 리사이틀(가곡 프로그램이면 더 좋겠고)을 꼭 가고 싶다. 3층이라 음향은 정말 좋았지만 독창자의 표정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건 순전히 공연장용 망원경을 사놓고도 가져갈 생각조차 못한 내 잘못이지.


요 며칠 아마존 자체 제작 미드 Mozart in the jungle를 정주행해서인지 지휘자를 평소보다 더 유심히 눈여겨보게 되더라. 작곡가의 의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지휘자로서 연주자들에게 원하는 요구사항을 손끝으로, 몸짓으로 소통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다. 


막귀에 음못알이라 음악에 대한 설명은 동영상으로 대신한다. 도입부부터 현악기 선율이 가슴을 후벼파니 주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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